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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생활

Hoje, 포르투갈 53. 이 빠진 접시도 괜찮아요

by 호재 유럽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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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포르투에서 근처 맛집이 있다길래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포르투갈에 온 지 얼마 안 된 여행자 마인드가 뿜뿜 하던 때라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신비롭게까지 보였습니다.

 

호텔 매니저가 추천해 준 맛집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려서 음식들이 나왔는데 헉, 이 접시들은 뭔가.

 

접시들이 죄다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는 겁니다. 

아니, 이런 접시에 음식을 서빙한다고?

그것도 꽤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한국인 마인드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죠. 

한국에서 저런 접시에 음식을 내놨다가는 당장에 인터넷게시판에 올라가거나

별점테러받기 딱인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 식당주인은 태연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릇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만큼 전통과 역사가 있는 그릇이고 우리 집은 그런 맛집이다 하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이 빠진 그릇은 그 뒤로도 다른 음식점에서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기 음식은 식기에 입을 대고 먹기보다는

덜어먹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정도 빠진 것은 큰일? 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그릇들이 할머니, 아니면 엄마가 쓰던 나름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다 보니

더욱이나 쉽게 버리지 않는 것이죠. 

 

저 역시 한국에서는 그릇이 이가 빠졌다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버리거나 사용하지 않고 찬장에 처박아 두곤 했는데

 

여기서는 이가 좀 나가도 입을 대고 쓰는 그릇이 아니라면

그냥 쓰게 되더라고요. 

이런 걸 현지화라고 하나요..ㅋㅋ

 

넌 너무 많은 이가 빠져있구나ㅎㅎㅎ

 

사실 유럽사람들은 물건을 쉽게 사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그게 물건을 소중하게 여겨서건, 그만한 경제능력이 안 돼서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말이죠.

 

건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천히 짓고 오래도록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한번 지어진 역사를 가진 건물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모습을 유지해서

살아가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니 사실 도시 전체로 보면 낡았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좀 깨끗하게 밀고 새 건물을 지어도 되련만 그 무엇도 섣불리 바꾸지 않습니다.

아무리 불편하고 낡았어도 쉽게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이 유럽의 근본 성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매일 같은 카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에프스페소를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부자가 된다거나, 남들보다 더 많이, 좋은 걸 가지는 게

목표일 것 같지는 않은데

그들을 매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천천히 공들여서 알아가고픈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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